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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기고] '동아시아 균형자' 아세안과 韓 (2025.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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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국-수혜국 관계 넘어
포괄·전략적 동반자 격상
교역 늘리고 기술 공동개발
일자리·인재육성도 함께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연합체인 아세안은 한국 외교의 핵심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과 아세안은 이미 최고 수준의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CSP)를 구축했다. 아세안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이자 국내총생산(GDP) 세계 5위의 경제권이며 중국에 이어 한국의 제2 무역 파트너다. 미·중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한국과 아세안은 어느 한쪽에 서기보다 미국·중국 모두와 안정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이익이라는 '친미화중(親美和中)'의 현실 인식을 공유한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가 아니라 '동아시아의 균형자'로서 미·중 갈등을 완충하려면 한·아세안이 공동체 수준의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
12월 5일 마닐라에서 열린 '한·아세안 포럼'은 이재명 정부가 지난 10월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제시한 'CSP 비전', 즉 조력자(Contributor)·도약대(Springboard)·동반자(Partner)를 구체화하는 첫 자리였다. 정부, 학계, 싱크탱크 전문가들이 모여 선언적 비전을 실행 가능한 정책 언어로 전환하는 데 집중했다.
'꿈과 희망의 조력자(C)'를 지향하는 사회·문화 세션에서는 청년 장학금, 인턴십, 상호 연수 확대와 함께 2030년까지 연간 1500만명 인적 교류 방안이 제시됐다. '성장과 혁신의 도약대(S)'를 위한 경제 세션에서는 3000억달러 교역을 목표로, 기존 저임금 제조 중심의 가치사슬을 넘어 디지털·녹색 전환, 기술·인재 역량 강화, 자유무역협정(FTA) 업그레이드의 필요성이 강조됐다. '평화와 안정의 동반자(P)'를 주제로 한 정치·안보 세션에서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전문가 회의 내 온라인 스캠 대응 논의 신설, 사이버 범죄·마약·인신매매 공동 대응, 해양 안보와 재난 협력으로 공동안전지대 확장, 공적개발원조(ODA)에 공적안보원조(OSA)를 추가하는 방안 등이 논의됐다.
CSP 비전은 '원조하는 한국·수혜국 아세안'이라는 구도를 넘어 시민 안전, 일자리, 기후위기 대응, 디지털 전환 등을 함께 책임지는 전략적 공동체로 나아가자는 제안이다. 이번 포럼은 CSP 비전 발표 이후 정치·안보, 경제·사회·문화 전 영역을 아우른 첫 종합 논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비전 발표 직후 그 실행 전략을 내년 아세안 의장국인 필리핀에서 논의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상징성도 컸다. 향후 아세안 수도인 인도네시아와 차기 의장국 등지에서 이러한 포럼을 정례화해 한국의 지속적이고 확고한 협력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CSP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외교부를 넘어선 범정부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한국은 비자정책 완화, 숙련·준숙련 인력의 유입 확대, 아세안 출신 이주민의 정착·통합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동시에 학생·언론인 연수 등 우리 국민의 아세안 이해를 높이는 인식 제고 프로그램도 체계적으로 구축할 필요가 있다.
미·중 경쟁이 격화되는 시대, 아세안은 주변이 아닌 한국 외교의 핵심 자산이다. 아세안을 동아시아의 균형자로서 미래를 함께 설계할 전략적 동반자로 대할 때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전략적 무게감은 더욱 커질 것이다.
[신재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아세안센터 소장]